동거인 — 28화. 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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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28화

폰을 꺼내는 날을 정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계획은 예람이가 짰다. 나는 그게 의외였는데, 예람이는 담담하게 말했다. 삼 년 치 관찰이 있잖아, 나한테.

예람이의 계획은 이랬다. 새벽, 예람이가 평소대로 밥을 차리고 문 앞에 앉는다. 그 시간이 이 집에서 저 방이 제일 조용한 시간이라고 했다. 받는 시간이니까. 조용하다는 게 뭘 뜻하는지 나는 안 물었다. 그동안 내가 들어가서 폰만 가지고 나온다. 삼십 초 안에. 불은 켜지 않는다. 이불 쪽은 보지 않는다.

"보지 마. 약속해." 예람이가 말했다. "궁금해서가 아니라, 봤을 때 네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그래."

새벽 두 시 사십 분에 예람이가 들어왔다. 우리는 눈짓만 했다. 예람이가 즉석밥을 데우고, 공기에 옮겨 담고, 수저를 얹었다. 문 앞에 밥이 놓였고, 예람이가 벽에 등을 대고 앉았다. 그리고 예람이가 문에 대고 낮게 말했다. 삼 년의 어느 날에도 넣지 않았을 문장을 그날은 넣었다.

"언니. 오늘은 지우가 잠깐 들어갈 거야. 언니 폰만 가지고 나올 거야. 이상한 짓 아니야. 언니를 찾으려고 그래."

대답은 없었다. 예람이가 나한테 고개를 끄덕였다.

문은 소리 없이 열렸다. 방 안은 어두웠고, 살구색 커튼 때문에 가로등 빛이 살굿빛으로 들어왔다. 나는 폰 위치를 알고 있었다. 영상통화를 걸었던 밤, 진동 소리가 나던 방향. 창가 쪽, 상자 위.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다섯 걸음. 발바닥으로 장판의 온기가 느껴졌는데, 그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폰은 상자 위에 반듯하게 놓여 있었다. 화면이 위를 보게. 충전 케이블은 없었다. 폰 주변 어디에도 콘센트가 없었다. 나는 폰을 집었다. 폰이 따뜻했다. 쓰던 폰의 온도였다.

집는 순간 화면이 켜졌다.

배터리 41%. 새벽 2시 51분.

시간을 보고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낼 뻔했다. 그 시각이었다. 답장이 오던 시각. 나는 지금 그 시각의 그 방 안에 서 있었다.

잠금화면 사진이 떠 있었다.

이 집 거실이었다. 지금보다 벽지가 예전 것이고, 식탁에 넷이 앉아 있었다. 언니 — 얼굴을 처음 봤는데 알았다. 문주연과 닮아서. 그 옆에 예람이. 앳된, 대학생 예람이. 맞은편에 문주연. 그리고 그 옆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여자였다. 나이도 얼굴도 알 수 없었다. 다른 셋은 또렷한데 그 사람만 사진이 흔들린 것처럼 흐릿했다. 렌즈 초점이 사람 하나만 피해 간 것처럼.

삼십 초는 오래전에 지났을 거다. 나는 폰을 쥐고 돌아 나왔다. 이불 쪽은 안 봤다. 정확히는, 시야 가장자리로 들어오는 걸 어쩔 수 없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가장자리로 본 것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다. 확실하지 않은 건 안 쓰는 게 이 기록의 원칙이다.

문을 닫고 나오자 예람이가 밥공기를 치웠다. 우리는 부엌 불을 켜고 식탁에 앉아서 폰을 가운데 놓았다. 예람이가 잠금화면을 보더니 숨을 삼켰다.

"이 사진…"

알아? 하고 내가 물었다. 예람이는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확신을 가지고 저었다.

"이런 날이 없었어. 나 주연 언니 처음 봤어, 지난주에. 언니랑 셋이서… 넷이서 밥 먹은 적 없어. 이 거실에서 이런 상을 차린 적이 없어."

그런데 사진 속 예람이는 웃고 있었다. 젓가락을 들고, 옆 사람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조작이라기엔 자연스러웠고, 자연스럽다기엔 존재하지 않는 날이었다.

잠금은 못 풀었다. 여섯 자리. 예람이가 아는 언니의 숫자들을 다 넣어봤지만 아니었다. 세 번 틀리고 우리는 멈췄다. 이 폰은 문주연한테 가져가는 게 맞았다. 자매만 아는 숫자가 있을 테니까.

폰은 그날 밤 거실 서랍에 넣어뒀다. 자기 전에 나는 궁금해서 한 번 더 열어봤다. 배터리 41%. 몇 시간이 지났는데 1%도 안 줄어 있었다.

이 폰은 닳지 않는다. 삼 년 동안 저 방에서, 충전기 없이, 닳지 않은 채로 새벽 두 시 오십일 분마다 켜졌던 거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폰 회수 완료. 배터리 41% 고정(비정상).
잠금화면: 존재하지 않는 날의 저녁 식사. 4인. 1인 흐릿.
다음: 문주연에게. 잠금 해제.

넷이서 밥을 먹은 적이 없다는 예람이의 말을 나는 믿는다. 그런데 사진은 있다. 없던 날이 찍혀 있는 게 아니라면,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그날이 있는 거다.

— 29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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