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 — 27화. 친언니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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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거인》 — 연재 27화

편지를 보내고 아흐레 만에 문자가 왔다. 모르는 번호였다.

"토요일 두 시. 지난번 그 단지 상가 이층 카페. 가계부 원본을 가져오세요."

우리는 가져갔다. 세 권 다.

문주연은 창가 자리에 먼저 와 있었다. 커피는 시켜놓고 마시지 않은 채였다. 나는 그 안 마신 커피를 보고 이상하게 예람이 생각을 했다. 물을 받아놓고 안 마시던 밤들.

문주연은 인사를 생략하고 가계부부터 받았다. 첫 권을 펴서 몇 장 넘기다가, 손끝으로 글씨를 만졌다. 종이를 만지는 게 아니라 글씨의 획을 따라가는 손이었다. 그러다가 잘 먹는다, 다행이다, 가 적힌 페이지에서 멈췄고, 오 분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도 하지 않았다. 카페의 소음이 그 침묵을 가려줘서 다행이었다.

"주원이가 정리를 잘했네."

그게 첫마디였다. 울음 대신 나온 말이라는 걸 우리는 알았다.

그리고 문주연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서없이 시작해서 점점 순서를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나는 나중에 노트에 옮기면서 순서를 다시 잡았다. 요지는 이렇다.

그 집은 그들이 자란 집이 맞았다. 아버지가 오피스텔 분양 초기에 사서 이십 년 넘게 산 집. 자매는 셋이었다. 주연, 주원, 그리고 막내.

막내 이름에서 문주연은 처음으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이름을 말하는 대신 이렇게 불렀다. 우리 막내.

막내는 몸이 약했다고 한다. 잘 안 먹고, 조금 먹고, 큰방을 썼다고 한다. 볕이 제일 잘 들어서 부모가 큰방을 내줬다고. 그리고 이십 년쯤 전 어느 날, 막내가 없어졌다.

가출도 사고도 아니었다. 문주연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방에서 없어졌어. 방은 그대로인데 애만. 신발도 다 있고, 창문도 잠겨 있고." 경찰은 가출로 처리했다. 달리 처리할 방법이 없었을 거다.

"장례를 못 치렀어. 시신이 없으니까. 죽었다고 할 수가 없잖아. 그런데 살아 있다고 할 수도 없고. 그 사이에 뭐가 있는 줄 알아?" 문주연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렸다. "밥이야. 엄마가 밥을 계속 차렸어. 막내 몫을. 못 놓는 거야. 놓으면 진짜 없는 애가 되니까."

처음엔 그냥 슬픔이었다고 한다. 빈 방에 차리는 밥, 사다 놓는 우유.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게 줄기 시작했다. 차린 만큼, 정확히, 매일.

"엄마는 그때부터 살았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래. 애가 먹는다고 믿을 수 있게 됐으니까. 아빠는 반대였어. 아빠는 그때부터 죽어갔어. 뭐가 먹는지를 물었으니까."

부모는 그 몫을 이십 년 가까이 채웠다. 아버지가 먼저 갔고, 어머니가 갔고, 집은 남았고, 몫도 남았다. 그다음이 자매 차례였다.

"그건 귀신이 아니야." 문주연이 말했다. 우리 눈을 처음으로 똑바로 보면서. "귀신이면 차라리 나아. 무서워하다 말면 되니까. 그건… 우리가 놓지 못한 몫이야. 놓지 못한 게 이십 년 넘게 매일 밥을 받으면, 그게 뭐가 되는지 나는 몰라. 아는 건 하나야. 그건 우리 막내로 시작했고, 이제 우리 막내인지 아닌지 아무도 몰라."

내가 물었다. 묻지 말았어야 하는 걸 묻는 목소리로. 그럼 왜 계속 채워요? 놓으면 되잖아요.

문주연은 나를 오래 봤다. 화내는 눈이 아니었다. 어린애를 보는 눈에 가까웠다.

"수칙 7번 읽었다며."

채우는 사람이 채우기를 그만두면, 그 사람의 몫을 가져간다. 물건 말고.

"그리고 하나 더. 놓는 거랑 그만두는 건 달라. 나는 아직도 몰라, 우리 중에 누가 놓은 적이 있는지. 다들 그만두지도 못하고 놓지도 못하고, 그냥… 채워."

두 시간이 그렇게 갔다. 문주연은 가계부를 돌려주면서 복사를 해도 되냐고 물었고, 우리는 그냥 두 번째 권을 드렸다. 헤어지기 전에 예람이가 마지막 질문을 했다. 막내분 성함이 뭐예요.

문주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계산서를 들고 일어나면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이름은 부르는 거야. 나는 이십 년째 그 이름을 소리 내서 못 불러."

그 집 현관에서 나오는데, 복도 끝 그 집 문이 반쯤 보였다. 문주연의 집에도, 닫힌 방이 하나 있을까. 우리는 묻지 않았고, 그래서 모른다.

가계부 옆 종이에 적었다.

기원(절반): 이 집 막내. 20여 년 전 방에서 소실. 장례 없음.
몫의 정체(문주연의 정의): 놓지 못한 것이 매일 밥을 받아 온 결과.
막내의 이름: 미확보. "이름은 부르는 것."

이름을 이십 년 동안 소리 내지 못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우리 집 문자창의 그 번호를 생각했다. 부르면 안 되는 것들의 목록이 자꾸 길어진다.

— 28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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