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위에서는 라디오를 끈다
어릴 때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습관에 대해 쓴다. 최근에 알게 된 것들이 있어서, 시간 순서대로 정리한다.
아버지는 운전 중에 다리를 건널 때마다 라디오를 껐다. 고가도로도, 강 위 대교도, 짧은 교량도. 다리 진입 직전에 손이 먼저 갔다. 대화 중이어도 라디오만은 껐고, 다리가 끝나면 다시 켰다. 어릴 때 물어본 적 있다. 아버지는 앞을 본 채로 대답했다. "다리 위에선 전파가 안 좋아."
전파 때문이라기엔 노래가 멀쩡히 나오다가 꺼지는 거였지만, 애들은 부모의 이상한 습관을 그냥 세계의 규칙으로 받아들인다. 나도 그랬다.
아버지는 올봄에 돌아가셨다. 심장이었고, 갑작스러웠다.
차를 정리하다가 글러브박스에서 수첩을 찾았다. 차량 정비 기록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손글씨로 다리 이름이 적혀 있었다. 스물몇 개. 우리 동네 근처 다리부터 지방 국도의 작은 교량까지. 몇 개는 줄이 그어져 있었고, 몇 개 옆에는 시간대가 적혀 있었다. "해 지고 나서"라거나, "비 오는 날"이라거나.
**업데이트 1**
수첩의 다리들을 지도에서 찾아봤다. 공통점이 없어 보였다. 강을 건너는 다리도 있고, 그냥 도로 위를 지나는 고가도 있다. 그러다 오래된 지도를 겹쳐보고 알았다. 그 다리들은 전부, 지금은 덮여서 안 보이는 물 위를 지난다. 복개천. 매립한 저수지. 물길을 돌리고 덮은 자리들. 지금 지도에는 물이 없는데, 옛날 지도에는 있다.
아버지는 물 위에서 라디오를 껐던 거다. 보이는 물이든, 덮인 물이든.
**업데이트 2**
시험해봤다는 걸 먼저 사과하고 싶다. 어리석은 짓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수첩에서 줄이 안 그어진 다리 하나를 골라서, 밤에, 라디오를 켠 채로 건넜다. 음악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다리에 올라선 순간 라디오가 스캔을 시작했다. 주파수 숫자가 혼자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대지 않았다. 채널 사이의 잡음, 잠깐씩 걸리는 방송 조각들, 다시 잡음. 다리가 끝나는 순간 스캔이 멈췄고, 처음 듣던 방송으로 돌아와 있었다.
차를 세우고 한참 앉아 있었다. 제일 무서웠던 건 스캔 중에 들린 어떤 소리가 아니다. 아무것도 특별한 게 안 들렸다. 무서웠던 건 라디오가 뭔가를 찾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주파수를 하나씩 넘기면서. 맞는 채널을.
**업데이트 3**
그 뒤로 우리 집 차 라디오가 가끔 혼자 스캔을 한다. 다리 위가 아니어도. 주차장에서, 마트 앞에서. 시동을 걸면 스캔 중일 때가 있다. 정비소에서는 이상 없다고 했다.
어머니에게 수첩을 보여드렸다. 어머니는 수첩을 오래 넘겨보다가, 내가 모르던 얘기를 했다. 아버지는 젊을 때 하천 공사 현장에서 일했다. 물길을 덮는 공사들. 그 시절 얘기를 평생 안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아는 건 하나뿐이었다. 언젠가 딱 한 번,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신 밤에 이런 말을 했다고.
"덮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야. 밑에서 듣고 있어. 그러니까 위에서는 조용히 지나가야 돼."
**마지막 업데이트**
수첩은 내가 가지고 있다. 줄이 그어진 다리들이 뭘 뜻하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 건너본 다리라는 뜻인지, 이제 안 위험한 다리라는 뜻인지, 반대인지.
우리 차는 이제 라디오를 안 듣는다. 나는 다리 앞에서 손이 먼저 간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딸이 지난주에 물었다. 아빠는 왜 다리에서 라디오를 꺼?
전파가 안 좋아,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 애도 언젠가 수첩을 물려받게 될 거다. 그때까지는 이 대답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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